조금 지난 얘기지만, 인터넷 게시판에서 "미국 대사관 직원이 조선족에게 쓴 글"이라는 제목의 글을 몇 번 보았다. 같은 글이 계속 올라오는 걸 보니 나름대로는 꽤 인기(?) 있는 듯하다. 내용을 보자면 개그도 이런 개그가 없지만.. -_-;;
(혹시 못 읽어본 분들은, 네이버 같은 데서 한번 검색해보시길..
그러나 사실 실제로는 눈 버리는 글이라 별로 권하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여기 굳이 인용하지도 않음... -_- )
주미대사관을 비롯해서 소위 해외 공관들이 정작 재외국민에 대한 서비스라는 본연의 임무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워낙 악명이 높아서 굳이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개중에 좀 생각이 바로 박힌 직원이 현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쓴 글인가보다.. 하면서 클릭했었다.
그러나 조금 읽다보니, 헛웃음만 나오는, 한마디로 3류 개그 수준의 글이었다.
우선 먼저, 이 글은 '당연히' 현직 외교관이 쓴 글이 아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차치하고, 소위 엘리트 코스라는 외무고시를 정식으로 합격한 외교관이라면 이 정도로 유치한 한글 구사능력을 보여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요즘에는 외무고시 외의 경력자 특채 방식으로 뽑는 외교관도 많지만, 그들 역시 외교관으로 뽑힐 때는 이미 그에 걸맞은 수준의 교양과, 그 연장선에서 이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오탈자 뒤범벅에 초딩 수준의 띄어쓰기와는 수준이 다른 한글 구사능력을 인정받았다고 보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실제로 이 글을 쓴 사람이 어떤 인물인지는 물론 알 수는 없다. 말 그대로 초딩인지, 네티즌들 낚는 데 희열을 느끼는 소위 히키코모리인지..
이런 류의 사칭글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이 글에는 출처가 붙어 다니는데, 1차 출처는 다음의 한 게시판이고, 다시 거기에 나와 있는 출처는 국제결혼과 관련된 비공개 까페여서, 굳이 가입까지 해서 확인할 정성까지는 내고 싶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인터넷에는 너무나 많은 사칭과 조작, 왜곡 글들이 넘쳐난다.
누구나 그런 글들을 보면서 옥석을 가려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엉터리 글에 혹해서 같이 흥분하면서, 스스로 바보가 되어버린다.
얼핏 생각나는 사례들만 보더라도, 지금도 소위 네이버 지식인에는 여성(가족)부가 조리퐁을 판매금지시켰다고 비분강개하는 글들이 수두룩하다.
여성운동가 김신명숙 씨가 모 TV 토론프로그램에 나와서, 군필자를 비웃는 장면이라는 캡션이 친절하게 사진 속에 박혀 있는 캡처 파일들도 돌아다니는데, 그때마다 정확히 어느 프로그램이냐, 임의로 캡션 박아넣은 사진 말고, 실제 동영상을 좀 보자..라고 리플을 달아도, 이제껏 한 번도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은 일이 없이 지금도 여전히 그 정체불명의 캡처들은 인터넷을 횡행하고 있다.
인기그룹 샵이 해체됐을 때, 불똥은 당시 서지영 씨와 사귀고 있던 류시원 씨에게까지 옮겨붙었다.
류시원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지금도 '류시원 뺑소니'를 주제어로 검색해보면 류시원 씨가 사람을 치어죽이고 뺑소니를 쳤다는 '기사'(그것도 중앙 일간지 기사!!)가 줄줄이 튀어나온다. 심지어 어떤 기사에는 음주운전이었다는 얘기도 있고, 그에 딸린 리플들은 하나같이 류 씨가 집안 빽이 좋아서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죽이고 뺑소니까지 치고도 풀려났다면서 그를 비난하는 내용들 일색이다.
그러나 정작 그 기사의 출처로 인용된 언론사 디비를 검색해보면, 문제의 기사에 '음주'니 '뺑소니'니 하는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어딘가에서 이 얘기를 했더니, 누구는 '류시원 집안 빽으로 언론사에 압력을 넣어 기사까지 바꿨다'고 더 흥분을 했다.
말이 길어졌는데, 문제의 기사를 보면 사고 시간은 밤 12시 10분, 사고 장소는 강남 신사동 사거리였다. 사고를 당한 행인은 택시를 잡기 위해 도로에 내려와 있었다고 되어 있다.
신사동 사거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밤 12시 무렵의 신사동 사거리가 얼마나 혼잡한 곳인지, 과연 꽉 막힌 도로에서 사람을 치어죽이고 '뺑소니'를 친다는 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지, 웃음밖에 안 나올 것이다.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그의 또다른 언행들에 대한 평가와는 전혀 별개로, 최소한 이 사건 자체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도대체 멀쩡한 기사에 굳이 '뺑소니'니 '음주'니 하는 단어들을 집어넣고, 이게 기사 원본이다.. 하면서 인터넷에 퍼뜨리는 사람들의 심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아니, 그들의 심리까지는 논외로 하고, 이런 식의 허위 조작된 글들에 일방적으로 휘둘리고 따라서 흥분해도 좋은 일일까..?
(심지어 '뺑소니'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없는 실제 기사를 퍼와놓고서도, 그 밑에 뺑소니를 이유로 욕하는..난독증으로 의심되는 글들도 한둘이 아니다..)
논리에 비약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런 우리들의 심리상태가 있기에, 전과 14범이 TV드라마로 조작된 이미지 하나로 대통령이 되는 일까지 가능했던 건 아닐까?
(글이 길어져서 생략했을 뿐이지, 나는 전혀 그 연결고리가 '비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_-)
얘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조선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하는 것은 또 전혀 다른 논의의 대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조선족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건 간에, 입장의 차이를 떠나서, 택도 없는 주미대사관 외교관을 사칭하면서까지 이런 글을 지어내야 할까?
(만에 하나, 아니 억에 하나.. 실제로 외교관이 이 글을 썼을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못박고 싶지는 않다. 세상에는 워낙 상식 밖의 일들도 비일비재하니까.
그러나, 이 정도 한글 구사능력을 가진 분이 실제로 외교관이라면, 그 분의 이성적 판단능력이 과연 외교관에 적합한 분인지,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평소 해외공관에 대해서 거의 일방적으로 비난 일색이던 네티즌들이 엉뚱하게도 이런 사칭글에 대해서는 아무 의심도 없이 '맞아 맞아' 하는 모습은, 도대체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이런 사칭은 정작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의 신뢰성을 떨어뜨려야 정상이지만, 현실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칭글을 읽으면서, 심지어 사칭인 걸 알게 된 뒤에조차도, 자신과 입장이 같으면 사칭이건 말건 상관없다...는 듯한 분위기까지 느낄 때는 그저 섬찟하기만 하다...
낚시글은 악플러보다 훨씬 악질로 볼 수밖에 없지만,
입장이 같다고, 내용이 맘에 든다고, 조작된 낚시글을 문제삼지 않고 오히려 지지하는 사람들 또한
악플러보다 악질이라는 책임을 같이 져야 하지 않을까..?